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그러나 전체 반도체 시장의 30.7%를 차지할 뿐이다.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으로의 외연 확장이 절실한 가운데 중국의 추격세가 매섭다. 한국은 이제 차세대 메모리를 연구하고 개발하여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中, 반도체 자급률 50% 위해 1조 위안 투입
韓, 메모리 초격차 유지하고 시스템 집중해야
1986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갔다. 1988년, 전 세계에서 매출이 가장 큰 반도체 회사는 일본의 NEC였고, 2위는 도시바였다. 인텔의 당시 매출은 NEC의 절반을 넘기는 수준에 그쳤으며, 삼성전자는 1/4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8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은 각각 전 세계 매출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현재 10위 안에 남아있는 일본 기업은 도시바뿐으로, 그마저도 삼성전자의 1/6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영원한 강자는 없는 것이다.
지난 10월 11일, 서울 코엑스에서 한국반도체산업협회와 마이스포럼이 주관한 ‘2019 반도체 부품 소재 동향 및 이슈 기술 세미나’가 열렸다. 여기서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의 이건재 교수는 ‘미래 유연 반도체 및 차세대 메모리 기술’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에서 이 교수는 먼저 한국 반도체 산업이 마주한 현안과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강점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반도체 분야는 메모리다. 세계 D램 시장은 3개 업체, NAND 시장은 5~6개 업체가 과점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을 합치면 한국 기업의 해당 시장 점유율은 각각 72.2%, 49.7%에 달한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전체 반도체 시장의 30.7%를 차지하는 반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69.3%를 차지하고 있다. 더군다나 5G, IoT, AI, 자율주행차량의 급속한 발전과 보급은 비메모리 반도체의 수요 증가를 더욱 가속하고 있다.
▲5G와 IoT의 발달로 반도체는 이제
인간이 사용하는 기기뿐만 아니라
인간이 생활하는 주변 전부에 탑재될 것이다
5G와 IoT의 발달로 기존에는 센서와 SoC 등이 탑재되지 않던 사물에 비메모리 반도체를 탑재하여 커넥티비티를 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AI 프로세싱 수요가 클라우드에서 에지로 확산하면서 AI에 최적화된 프로세서를 찾는 단말기 제조사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자동차는 아예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이 추세를 쫓아가기 위해 정부에는 올해 초부터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천명했다. 시스템 반도체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뜻하는 한국에서의 용어로 시스템 LSI라 부르기도 한다.
실체화되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
달이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찬다. 순위와 우위는 언제는 뒤집힐 수 있다. 역사적으로 그래왔듯이 말이다. 이 점에서 중국은 가장 경계해야 할 경쟁자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전자산업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한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의 60%가 중국에서 소비된다. 반도체는 2015년부터 중국의 최대 수입품목이 됐으며, 중국의 반도체 무역수지 적자 폭은 매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중국이 달가워할 리 없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50%를 목표로 삼고 2017년에만 반도체 산업에 1조 위안, 우리 돈으로 약 166조 300억 원을 투입했다.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M&A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선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반도체 수요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월등하다. 한국에선 반도체를 납품할만한 곳이 몇 없다. 몇 없는 곳들은 또 해외 유명 비메모리 반도체를 사용한다. 자체적으로 비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중국은 그렇지 않다.
일단 가전, 모바일, 자동차, 웨어러블 등 완성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한국보다 많다. 완성품 업체 내에서의 공급망 구성 권한도 한국보다 낮아 사용할 반도체를 택할 때 명성보단 실리를 택한다. 중국의 팹리스 업체는 2015년에는 736곳이었으나 2018년에는 1,658곳으로 2배가량 늘었다.
파운드리 역량이 강한 대만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TSMC와 UMC 같은 대만 파운드리 업체는 이미 중국에 디자인하우스를 세워 팹리스 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이나 관계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영세한 규모의 국내 팹리스 업체들과는 상황이 다르다.
못하는 건 이제부터, 잘하는 건 계속해서
가트너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비메모리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는 63%를 기록한 미국이 차지했다. 한국은 약 3.4%였다. 압도적인 상황이지만 달리 보면 확장의 기회가 있는 것이다.
지난 12일, 대표적인 팹리스 업체인 Arm이 ‘테크 심포지아 2019’ 행사를 개최했다. 여기서 Arm은 개발 시점이 아닌 생산 시점에서 사용되는 IP 비용만 내면 되면 신규 계약모델 ‘Arm 플렉서블 액세스’를 강조했다.
이 계약모델은 지난 7월 공개되었는데, Arm 코리아의 황선욱 지사장은 “한국에선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10곳의 업체가 현재 Arm 플렉서블 액세스를 활용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아직 중소 팹리스에선 이 모델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키워 제조업과 융합할 것이란 구호가 헛되지 않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액수보단 수요에 맞는 정책을 펼친다면 판을 키울 수 있다. 중국의 비메모리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아직 4%다.
▲머신 러닝이 확산되면서 메모리 중심 컴퓨팅이 주목받고 있다. 메모리 중심 컴퓨팅은 CPU와 메모리 간 병목 현상을 줄여 연산 성능을 높이는 것으로, 컴퓨터 구조를 기존의 CPU-메모리-스토리지에서 CPU-스토리지 클래스 메모리로 전환하는 것이다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커지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메모리 반도체 시장 또한 커지고 있다. 비정형 데이터의 급속한 증가로 스토리지와 메모리 수요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머신 러닝을 위한 메모리 중심 컴퓨팅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한국이 여전히 강세다. 업계에선 한국의 D램 기술력이 중국보다 5년, NAND 기술력이 4년 정도 앞서 있다고 보고 있다. D램은 미세공정이, NAND는 적층공정이 중요한데 중국의 경우 적층공정에 비해 미세공정에 더 취약하다.
한국은 아직 중국에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성장 동력이 여전한 만큼 이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도체 재료와 장비, 설계 등 기초 영역에서의 기술을 확보하고 국산화해야 하며, 차세대 메모리를 연구·개발하여 그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대표적인 차세대 메모리로는 상변화 메모리(Phase-change Memory; PCRAM), 저항변화 메모리(Resistance Memory; ReRAM), 자기저항 메모리(Magnetic Memory; MRAM)이 있다. 또한, AI, 뉴로모픽, 유연 반도체 등 미래에 사용될 메모리 소자 연구개발에 나서야 한다.
새로운 반도체를 만들려는 다양한 시도들
이 교수는 강연 후반에 과거 개발했지만 상용화하지 못했거나 현재 개발 중인 반도체 기술을 소개하며 인사이트를 공유했는데, 기사에서는 두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공유 사례는 게이트가 드레인과 소스를 원형으로 감싼 3차원 트랜지스터(Surrounding Gate Transistor; SGT)다. 반도체 소자가 갈수록 작아지면서 전류가 게이트를 무시하고 소스와 드레인 사이를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나온 개념이다. 드레인과 소스를 원형으로 감싸주면 전류가 도망갈 곳이 없어진다.
최근 반도체의 연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패키지 내 소자끼리의 전선 길이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소자가 작아지면서 전선도 작아지다 보니 전선 폭이 좁아져 저항은 높아지고 있고, 전선 간격도 줄어드니 전선 간 기생 성분이 발생하며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CPU의 속도는 1/RC다. 여기서 R은 금속 저항이고 C는 금속 간 기생성분이다. 만약 칩 사이즈를 줄여 전선 길이를 1/3로 줄일 수 있다면 R과 C 역시 1/3이 되어 CPU 속도는 10배가량 빨라진다. 마침 3차원 트랜지스터와 평면 트랜지스터의 1/3이다. 하지만 소재 등의 문제로 상용화는 되지 않고 있다.
두 번째 공유 사례는 유연 반도체다. 유연성을 지닌 전자기기는 바이오 분야 등지에서 수요가 꾸준히 예측된다. 그러나 유기 재료의 한정된 성능과 확장성으로 인해 디스플레이, 프로세서, 메모리, 파워를 통합한 제품 개발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폴리머 소재의 근본적인 열 불안정성이 고성능 전자기기에 필수적인 고온 공정을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ILLO 공정으로 개발된 유연한 크로스바 메모리
(이미지=KAIST)
이 문제는 무기 기반 레이저 리프트오프(Inorganic-based Laser Lift-off; ILLO) 공정을 이용하면 해결할 수 있다. ILLO 공정은 강성 기판 위에 레이저 반응성 박리층을 증착한 다음, 박리층 상부에 고밀도 크로스바 멤리스티브 메모리 같은 초박형 무기 전자 소자를 제작한다. 그리고 기판 후면에 레이저를 조사하면 레이저와 박리층 사이가 반응하여 초박형 무기 전자 소자 층만 기판에서 박리하고 이를 플라스틱이나 종이, 심지어는 직물에 전송한다.
이 교수는 ILLO 공정은 플라스틱 기판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웠던 고온 공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송된 100나노 두께의 소자는 심한 구부림에도 유연한 기판에서 RAM 동작을 수행할 수 있다. 헬스케어 시장이 점점 커지고 바이오에 IoT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유연 반도체는 그 시도의 해답이 될 수 있다.
상황에 따른 유연함과 적합함이 필요할 때
흔히 애플과 삼성전자를 라이벌 관계라 칭하지만, 두 기업은 협력하는 일이 많다. 특히 애플은 삼성전자가 오늘날 세계 최고의 매출을 자랑하는 반도체 기업으로 만드는 데 간접적으로 공헌한 바 있다.
1962년부터 컴퓨터라 하면 곧 IBM의 메인프레임이었다. 지금도 금융권에서 쓰이는 이 메인프레임 컴퓨터는 크고, 비싸고, 내구성이 강하다. 한번 사면 몇십 년을 사용하니 장인정신으로 제작된 일본산 반도체가 많이 쓰였다. 하지만 197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 2를 출시하면서 새로운 컴퓨터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81년에는 IBM에서 개인용 컴퓨터, 즉 PC를 출시했다. PC는 개인용이었기 때문에 내구성이 메인프레임만큼 강할 필요가 없었다. 교체 주기도 빨랐다.
삼성전자는 1983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다. 성능과 내구성은 일본산 반도체만 못해 메인프레임에는 쓰이지 못하지만, PC에는 쓰일 수 있는 적당한 반도체를 싼값에 생산하면서 오늘날의 삼성전자가 되었다. 반면 일본은 그러지 못했다. 일본은 잘 만드는 것을 만들었고 한국은 잘 팔리는 것을 만들었다.
현재의 중국 반도체 산업이 과거 한국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잘 팔리는 것을 만들고 있으며 잘 사주는 곳까지 만들고 있다. 이런 중국에 맞서기 위해선 위에서 언급했듯이 메모리 초격차와 차세대 반도체 개발이 필요하다. 그리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아닌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