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크니카 코리아 이승규 매니저가 말하는 전력 인프라 현대화의 기술적 쟁점
- “AC에서 DC로의 전환, 핵심은 열(Heat)과 오차(Drift)를 잡는 정밀 계측 기술”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패러다임이 격변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와 전기차(EV) 보급 확대는 수십 년간 정체되어 있던 전력 인프라에 유례없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단순히 전기를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전달할 것인가가 국가적 과제가 된 시점이다.
본지는 마크니카 코리아에서 에너지 미터링 및 파워 그리드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이승규 매니저를 만나, 노후화된 전력망의 디지털 전환(DX)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이 직면한 기술적 도전과 그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노후 전력망의 경고, ‘디지털 변전소’로의 진화는 필연
Q. 국내외 전력 인프라 노후화 문제가 심각한 화두입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는 어떠한가요?
“미국의 경우 1970년대에 구축된 전력망이 여전히 가동 중일 정도로 노후화가 심각합니다. 한국 역시 설치된 지 30~40년이 넘은 송배전 설비들의 교체 주기가 도래했죠. 문제는 과거의 전력망이 지금처럼 AI 데이터센터나 급속 충전기 같은 고부하 장치들을 상정하고 설계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최근 빈번해진 아파트 단지 블랙아웃이나 변압기 사고의 상당수가 이러한 노후 설비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해 발생합니다.
결국 해결책은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 변전소를 IED(지능형 전력기기)와 FRTU 기반의 ‘디지털 변전소’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입니다. 전력 흐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전조 증상을 감지해 사고를 예방하는 시스템 구축이 현재 전력 시장의 가장 큰 흐름입니다.”
AC와 DC의 공존, 그리고 ‘신재생 에너지’의 역설
Q. 최근 DC(직류) 송배전 시장이 크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존 AC(교류) 중심 체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신재생 에너지와 ESS(에너지 저장 장치) 때문입니다. 태양광 등에서 생성되는 전기는 기본적으로 DC입니다. 이를 기존 전력망에 태우기 위해 AC로 변환하고 다시 사용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하죠.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DC 송배전망 구축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DC는 AC와 달리 ‘생성 자체의 불안정성’이라는 숙제가 있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거나 해가 지면 전력이 끊기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ESS와의 유기적인 결합이 필수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력의 흐름을 초정밀하게 계측하고 제어하는 기술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엔지니어의 숙제: 하모닉 분석과 ‘손실 없는 파형 캡처’
Q. 전력 품질 관리에서 엔지니어들이 가장 까다로워하는 기술적 난제는 무엇입니까?
“갑작스러운 부하 변동으로 인한 전력 품질 저하, 즉 하모닉(Harmonic, 고조파) 문제입니다. 이를 정확히 분석하려면 FFT(고속 푸리에 변환)를 수행해야 하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바꿀 때 아주 미세한 데이터 로스(Loss)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소위 말하는 ‘손실 없는 파형 캡처(Lossless Waveform Capture)’ 기술이죠. 신호가 왜곡되면 분석 결과 자체가 틀어지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는 데이터시트상의 스펙은 비슷해 보여도 실제 시스템에 적용했을 때 샘플링 속도와 정밀도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ADI의 솔루션들이 필드에서 ‘물건’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바로 이 원천 데이터의 무결성 때문입니다.”
Q. 계측 과정에서 ‘온도 드리프트(Drift)’ 문제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특히 대전류가 흐르는 DC 계측에서는 션트(Shunt) 저항에서 발생하는 열이 계측값에 오차를 만듭니다. 전기를 쓰지 않는데 쓰고 있다고 나오거나, 그 반대의 상황이 생기면 전력망 전체의 신뢰도가 무너집니다. 최근에는 온도 변화에도 오차율이 극히 낮은 칩셋들이 출시되면서 여름과 겨울의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계측이 가능해졌습니다.”
설계의 단순화: “주변 회로를 덜어내는 것이 곧 경쟁력”
Q. 최근 하드웨어 설계 트렌드 중 하나가 ‘고집적화’입니다. 전력 기기 설계에서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나요?
“과거에는 센서와 ADC 사이에 필터, 앰프 등 수많은 소자를 덕지덕지 붙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ADC 자체의 입력 임피던스를 극대화해 센서와 직접 연결(Direct Interface)할 수 있는 솔루션이 대세입니다.
예를 들어 AD4858 같은 제품은 주변 회로를 획기적으로 줄여 PCB 면적을 절감할 수 있게 해줍니다. 보드가 작아진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크기가 줄어드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신호 간섭이 줄어들고, 제조 비용이 절감되며, 최종 제품의 신뢰성이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듭니다.”
미래 전력망의 핵심 키워드, ‘안전’과 ‘현지화’
Q. 전력망 인프라는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설계 시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요소는 무엇입니까?
“절연(Isolation)입니다. 고전압이 흐르는 전력망에서 제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한 절연 설계는 필수입니다. ADI의 아이커플러(iCoupler) 같은 기술은 전력과 데이터를 동시에 절연하면서도 제품 사이즈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또한, 국가별로 전력 규격(Voltage, Frequency)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유연하게 지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희 마크니카 코리아는 단순히 칩을 파는 것을 넘어, 한국 시장의 특수한 요구사항에 맞춰 소프트웨어를 커스터마이징하고 캘리브레이션하는 기술 지원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에디터 노트] 이승규 매니저와의 대화를 통해 전력망 현대화가 단순한 교체 사업이 아닌, 초정밀 반도체 기술과 소프트웨어가 결합한 ‘하이테크 산업’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력 효율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 엔지니어들의 보이지 않는 사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