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을 대상으로 반도체 기술을 무기화하자, 중국도 반도체 자립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는 등 맞불을 놓고 있다. 여기에 일본, EU, 대만 등 반도체를 둘러싼 세계의 관심이 뜨겁다. 이에 정부도 5월부터 일련의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이는 세계 주요국의 움직임에 대응해 국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지원 범위가 넓고, 타국 정책과의 차별성이 적고, 아직은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가 엿보인다.
정부, 2030년 목표로 K-반도체 전략 구체화
반도체 전후방 산업 총망라, 다소 분산된 측면
수요처 발굴, 인재들이 이직 원하는 기업 필요해
미국이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자국의 반도체 기술을 무기화하는 전략을 취하자, 중국도 반도체 자립을 이루겠다면서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는 등 맞불을 놓고 있다. 여기에 세계 최고의 소재, 부품, 장비 경쟁력을 토대로 반도체 산업 부활을 꿈꾸는 일본, 동아시아로 치우친 반도체 생산역량을 되찾고 싶은 유럽연합(EU), TSMC·UMC·PSMC 같은 파운드리 기업을 보유하며 막강한 반도체 제조 우위를 지키려는 대만 등 반도체를 둘러싼 세계의 관심이 뜨겁다.
◇ 5월 13일, 범부처 ‘K-반도체 전략’ 발표
이에 정부도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에서 2030년 세계 최고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하는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K-반도체 벨트 조성, 반도체 위기 대응력 제고에 510조 원 이상의 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다.
▲ K-반도체 벨트 개념도 [그림=산업통상자원부]
K-반도체 벨트 조성은 기업들의 참여가 중심이다. 국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해외 장비 기업인 램 리서치의 공장 증설을 지원하고, 첨단 EUV 장비 독점 공급사, ASML의 트레이닝 센터 건립, 패키징 분야에 대한 투자와 팹리스 밸리의 조성으로 세계 최대의 반도체 국가가 된다는 복안이다.
제조 역량 확보를 위해 R&D 최대 40~50%, 시설 투자 최대 10~20% 세액공제가 예정됐고, 1조 원 이상의 반도체 등 설비투자 특별자금도 신설된다. 화학물질, 고압가스, 온실가스, 전파응용설비 등 제조시설 관련 규제 합리화도 이뤄질 전망이다. 용인과 평택 등지에 10년 치 반도체 용수 물량 확보와 반도체 전략 제조시설의 전력 인프라 구축 시 정부와 한국전력이 최대 50% 범위 내 공동분담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그리고 반도체 관련 산업인력을 신규로 3.6만 명 육성할 계획이다.
또한, 2028년까지 SiC, GaN 등의 차세대 전력 반도체, AI 반도체, 첨단 센서 등의 개발에 2.5조 원이 투입된다. 반도체 특별법,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 국가 핵심 기술 협력업체 보안관리 강화, 탄소중립 조치들도 추진된다.
▲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에서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하는
정부 관계자들 [사진=청와대]
산업통상자원부 문승욱 장관은 “K-반도체 전략 성공 시에 수출은 2020년 992억 달러(약 112조 원)에서 2030년 2,000억 달러(약 226조 원)로 증가하고, 고용인원은 2019년 18.2만 명에서 2030년 27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 6월 10일, 산업부의 ‘K-반도체 예타 사업 추진방안’ 제시
산업부는 위 전략의 후속 조치로 소부장 양산형 테스트베드, 첨단 패키징 플랫폼 등의 인프라를 조성하기로 했다. ‘K-반도체 대규모 예타사업 본격 추진방안’을 통해 K-반도체 전략의 5개 대규모 예비 타당성 조사 사업으로 △소부장 특화단지 내 양산형 테스트베드 구축, △첨단 패키징 플랫폼 구축, △민관 공동투자 대규모 인력양성, △K-센서 기술개발, △PIM AI 반도체 기술개발 등이 구체화되었다.
이중 K-센서와 PIM AI 반도체 기술개발 사업은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착수된다. 두 사업은 차세대 제조업, 반도체 산업을 위해 필요한 부분으로, 각각 센서 R&D 지원과 센서 제조혁신 플랫폼 및 실증 인프라 확보, 메모리와 프로세서를 통합한 PIM(Processing in memory) 반도체 기술력 확보 등이 골자다. 또한, 내후년부터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에 테스트베드가 구축되고, 패키징 기술 평가 장비 90여 종이 도입되며, 반도체 산업 인력양성에 3,500억 원이 투입된다.
◇ 7월 1일, 범부처 ‘K-반도체 전략’ 추진현황 점검
정부는 제12차 혁신성장 BIG3 추진 회의를 개최하고, ‘K-반도체 전략’의 후속 조치 추진현황과 향후 계획을 점검했다. 이번 회의에서 정부는 올해 하반기 이후부터 세제지원, 금융지원, 규제 완화, 기반구축, 외자 유치, 인력양성, 기술개발 등의 분야에서 성과를 본격적으로 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먼저 △유망 반도체 기술 관련 기술과 사업을 육성하는 세제지원을 위해서 메모리, 시스템, 소부장 관련 기술을 국가전략 기술로 선정할 방침이고 현재 논의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기재부는 이달 안에 세법 개정안을 통해 국가전략 기술안을 발표하고,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 ASML은 반도체 첨단 공정에 없어선 안 될 EUV
장비를 생산하는 업계 유일의 기업이다 [사진=ASML]
이어 △투자 수요가 있는 파운드리, 소부장, 패키징 기업을 대상으로 자금 지원을 안내 중이며, △전파응용설비, 화학 시설, 전용 용기 관련 인허가 간소화가 추진 중이다. △용인 반도체 산단 구축과 가동을 위한 하천 점용허가 사전컨설팅이 진행 중이며, 용인과 평택에 필요한 반도체 관련 용수 물량을 연말까지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한, △해외 기업인 ASML의 EUV 클러스터 대지 확보와 램 리서치의 제조시설 구축을 위한 생산 라인 설계도 진행 중이다.
인력양성에는 △삼성전자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한, △반도체 인력양성 사업은 3,500억 원 규모로 3분기 중 예비 타당성 조사를 신청할 계획이다. 반도체 설계 교육센터(IDEC) 지원 확대 등 반도체 실무교육 강화를 위한 신규사업도 2022년부터 본격 추진된다.
지난해 4분기 예타를 신청한 △K-센서, PIM 반도체 개발 사업의 내년 예산 반영이 추진 중이며, 차세대 전력 및 AI 반도체 등 비(非) 예타 R&D 사업도 준비 중이다. 더불어 △반도체 등 국가 핵심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가칭 ‘국가 핵심 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준비한다. 향후 ‘반도체 특별법’에 반영하려던 주요 내용과 연계해 관계부처 및 국회와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이날도 문 장관은 “최근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지원하는 반도체 제조 기반이 국내에서 우선하여 증설될 수 있도록 세제, 금융 등의 지원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의 중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민간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부탁드린다”라고 언급했다.
◇ 반도체 수요 창출, 인재 유치 관련 보완 필요해
이번 일련의 정책 발표는 세계 주요국의 움직임에 대응해 국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지원 범위가 넓고, 타국 정책과의 차별성이 적고, 아직은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가 엿보인다.
▲ 반도체 역량이 강한 미국도 자국의 부족한
반도체 공급망에 고심하고 있다 [사진=Gage Skidmore]
지난 6월 8일, 조 바이든 美 대통령의 지시 아래 美 상무부가 자국의 100일간의 반도체 공급망 상황을 정리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반도체의 5개 필수 부문인 설계, 제조, 후공정, 소재, 장비 분야를 분석했다. 미국은 설계 부문과 반도체 제조용 액체 및 기체, 노광 이외의 반도체 장비에서 큰 강점을 보였으나, 제조와 후공정, 반도체 재료와 노광 장비는 해외에 크게 의존 중인 실정이었다.
미국은 반도체 제조 면에선 대만에, 수요 면에선 중국에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중국은 전 세계 제조 공장으로서, 반도체 수요가 타국보다 월등히 높아서 반도체 전후방 산업의 발전이 빠른 편이다. 동심(메모리), 비야디(차량용), 하오다(무선) 등 다양한 영역의 반도체 기업들이 6월 말 즈음에 기업공개(IPO)를 신청한 것도 중국의 반도체 산업의 발전 속도가 얼마나 빠른 것인지 짐작게 한다.
요점은 수요다. 전체 반도체 산업의 육성은 국내 반도체 수요에 따라 결정된다. 국내에도 세계적인 전자제품 기업이 있으나, 중국 기업들 수준의 반도체 수요를 발생시키진 않는다. 따라서 당장에 혜택을 받는 기업이 없더라도 국내산, 혹은 국내 기업이 설계한 반도체 구매 시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기업들에만 맡겨선 될 일이 아니다.
반도체 공급 불안정을 촉발한 차량용 반도체 부족은 8인치 웨이퍼 기반 칩의 생산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IEEE 스펙트럼에 따르면, 8인치 웨이퍼 기반 40nm 이상의 칩들이 전체 반도체 수요의 54%를 차지한다. 첨단 공정 개발도 중요하나, 덜 미세한 공정으로 제조되는 반도체에 대한 설계 및 제조 역량도 필요하다.
또한, 인재들이 취직하고 싶어 하는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인재 육성보다 중요하다. 반도체 산업은 자원보다 인재의 비중이 더욱 크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의 다수가 아직 미국에 쏠려 있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인재의 40% 정도가 해외 출신이란 점을 경계하고 있다. 반대로 이는 해외 인력이 보수 면에서 미국 반도체 기업에 취직하길 원한다는 말이다. 신규 인력양성도 좋지만, 기존 인력의 국내 기업으로의 이직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