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부족은 코로나19에 팬데믹으로 자동차 판매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던 주요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의 수요 예측 실패는 물론, 급속하게 진행되는 자동차의 전동화와 자율주행 기능의 강화도 주요 원인이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은 제조업 전체의 반도체 부족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이에 EU, 미국 등은 대만, 한국에 의존한 반도체 제조 역량을 되찾기 위해서 분주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테슬라 자극 받은 GM-폭스바겐, EV 비중 늘린다
모빌리티發 반도체 수급 불안정, 파운드리 증설
어려워 쉽게 해결되지 않아... EU, 美 칼 뽑아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안정에 파운드리 산업으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번 수급 불안정에는 NXP, 르네사스, 인피니언, TI, 마이크로칩 등 주요 차량용 반도체 업체의 수요 예측 실패에도 기인한다. SK증권 김영우 애널리스트는 완성차 업체들의 수요 급증도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GM의 메리 배라 CEO는 지난해 11월, 2025년까지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능에 270억 달러(약 30조 원)를 투자한다 밝혔다. 동시에 자체 개발한 준 자율주행 시스템 ‘슈퍼 크루즈’, 수직 이착륙 1인승 드론, 자율주행차 ‘캐딜락 헤일로 포트폴리오’, 전동식 팔레트 ‘EP1’, 전기 밴 ‘EV600’ 등 혁신 모빌리티 등을 공개했다.
폭스바겐의 헤르베르트 디에스(Herbert Diess) CEO는 지난 3월 15일, ‘파워 데이’ 행사에서 2030년까지 미국,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되는 자사의 차량 중 전기차의 비중을 각각 50%와 70%로 설정했다. GM과 폭스바겐의 이러한 공격적인 전기차 전략은 테슬라에 대한 위기감에서 발생했다.
테슬라는 2030년까지 연간 2,000만대의 전기차를 팔겠다는 전략을 세웠고, 지난해 9월, ‘배터리 데이’ 행사에서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2만5천 달러(약 2,800만 원) 가격의 전기차를 2023년까지 출시한다고 밝혔다.
▲ 테슬라의 주력 세단인 모델 3, 국내 가격은
5천만 원대 중반이다 [사진=테슬라]
완성차 업체들은 이제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가 등장하기 전까지 적절한 가격의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능을 구현해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했다.
그러나 뒤늦게 뛰어든 업체들이 테슬라만큼의 전기차 및 자율주행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고성능 센서와 거기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의 채택이 불가피하다.
중국의 니오(NIO)는 지난 1월 9일, 독자적인 자율주행 기능인 ‘NAD’를 공개했다. NAD의 핵심 부품인 ‘아퀼라(Aquila)’ 센서 모듈은 800만 화소 카메라 11개, 1,550nm 라이다 센서 1개, 밀리미터파(mmWave) 레이더 센서 5개, 초음파 센서 12개, GPU 2개, V2X 1개, 그리고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ADMS)으로 구성됐다.
특히 ADMS는 엔비디아 ‘오린(Orin)’ 칩을 4개나 탑재했고, V2X 기능을 위해 퀄컴 ‘스냅드래곤 오토모티브 5G 플랫폼’도 채택했다. 반면 테슬라의 ‘FSD’는 120만 화소 카메라를 사용하며, 라이다 센서가 없음에도 앞선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 수준의 향상과, 전기차 생산 확대 및 자율주행 기능 확보를 위해서 반도체와 파운드리 수요의 급증은 이제 필연적이다.
◇ 수요 늘었지만, 파운드리 증설 쉽지 않아
2021년 상반기 반도체 수요는 사회적 거리두기 확산에 따른 IT 기기 특수와 테슬라발 혁명에 따른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변화로 증가세를 나타냈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자산 가격의 급등도 이를 부추겼다.
반면 공급은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이엔드 파운드리 공급 부족은 ASML의 EUV 장비 공급 능력의 제약, 공정 미세화에 따른 수율 저하 등에 의해 발생했다. ASML은 최근에야 대규모 엔지니어 채용에 돌입했다. 올해 내로 EUV 공급 능력의 향상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미드레인지 파우드리 공급 확대 역시 UMC, 글로벌파운드리 등의 업체들의 투자 여력 부족으로 힘들어 보인다. 그나마 투자 여력이 큰 TSMC, 삼성전자는 10nm 이하 파운드리 증설 위주로 투자하고 있다. 2021년 1분기까지 대규모 생산량(CAPA) 확대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8인치 웨이퍼 기반의 파운드리들은 중고장비조차 구하기 쉽지 않아 캐파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17~20년까지 파운드리 투자는 매우 강력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증가분은 TSMC, 삼성전자, SMIC에 집중됐다. 특히 SMIC는 10nm 이하 파운드리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했으나, 미국의 제재로 인해 EUV 장비를 구매하지 못하면서 시장 진입에 실패했다.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도 변수다. 지난 2월, 30년 만의 한파로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S2 팹이 주변의 NXP, 인피니언의 팹과 함께 가동을 멈췄다. 네덜란드의 NXP, 독일의 인피니언은 세계 1, 2위의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다. 해당 분야 세계 3위인 일본의 르네사스 역시 지진과 화재에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 다시금 반도체 자립 나서는 서구권
현재진행형인 반도체 공급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이 제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포드는 1분기 목표 생산량을 20% 줄였고, GM도 생산량 감축의 불가피함을 역설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제조업 중심의 주요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대만 정부 및 TSMC 관계자를 찾아가 캐파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아시아에 종속된 파운드리 생태계 구조를 바꾸기 위해 유럽연합(EU) 집행부는 10억 유로(약 1조3천억 원)를 들여 최대 500억 유로(약 66조7천억 원) 규모의 반도체 제조 역량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 반도체의 20%를 유럽에서 생산하겠다는 포부인데, 현재는 8.5% 수준이다. 애플 역시 이에 동조하여 독일 반도체 센터에 10억 유로를 투자할 방침이다.
미국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을 바라보고 있다. 반도체 제조 경쟁력 극대화 및 자국 내 안정적 생산능력 확보를 위해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준하는 재정 및 인프라 지원과 조세 감면의 혜택을 통해 생산기지를 크게 늘릴 계획이다.
해당 계획은 고전하던 거인을 깨우고 있다. 이달 24일, 매출 기준 세계 최대의 반도체 기업인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200억 달러(약 23조 원)를 들여 미국 애리조나주에 팹 2기를 짓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공급망 검토를 개시한 행정 명령에 서명한 2월 24일부터 꼭 한 달 만이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이 가져온 위기감이 파운드리 산업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